‘한의원에서 화상치료가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자연재생한의원 조성준 원장이 지난 18년간 화상 환자 1만 명을 치료한 풍부한 임상경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한의학적 상처 치료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3도 화상 환자에게 침과 한약연고로 치료한 경과를 정리한 증례’를 SCIE급 저널에 발표하는 등 한방 상처 치료가 낯선 이들을 위해 과학적 검증 작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화상, 욕창, 피부괴사를 비롯한 다양한 외상 환자들에게 한의 치료로 희망을 전하는 조성준 원장은, 상처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글 편집실 사진 송인호
한의학에서도 손꼽는
‘마이너 영역’에 도전하다
화상은 한의학과대학 교과에서도 ‘옛날에는 이러한 처방을 썼다’는 내용의 한두 페이지 분량에 불과할 만큼 다루는 범위가 상당히 적다. 애초에 많이 다루지 않다 보니 다룰 이가 없어 사장된 분야라는 것이 조성준 원장의 설명이다. 극히 마이너한 화상 한의 치료분야에 조 원장이 뛰어든 이유는 눈앞에서 화상 환자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의학적 화상치료 방법을 개발한 천승훈 원장님이 자연재생한의원을 개원하면서 저도 합류했는데, 어느 날 형수님이 점심 식사를 준비하다 화상을 입으셨어요. 화상 전문병원에서 상처가 심해 수술해야 한다고 진단받은 상황이었는데, 형수님이 수술을 거부하고 한의 치료를 고집해 우리가 배우고 연구한 대로 치료해드렸고, 다행히 결과도 좋았습니다. 그러다 그해에 두 번째 사건이 터졌어요. 대학 동아리방에 불이 나 후배 세 명이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예요. 드레싱 과정에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무엇보다 상처가 제대로 낫지 않는 상황들을 보면서, 그때 처음 한방으로 상처를 치료해 통증을 최소화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조성준 원장은 가까이에서 겪은 두 번의 화상 경험에서 상처는 적절하게 치료하면 잘 회복될 수 있는데도 성급하게 수술을 결정하고, 그 결정으로 환자의 삶의 질이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조 원장은 ‘후유증이 적은 상처 치료’를 최대 목표로 삼았고, 그 철칙은 지금도 변함없이 고수해오고 있다.
한의 치료의 수단은 침과 한약연고
조성준 원장이 운영하는 자연재생한의원은 상처를 수술하지 않고 치료하는 특이한 한의원으로 입소문이 났다. 수술 대신 치료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침과 한약연고인데, 침은 상처 회복을 촉진하는 작용을 하고, 한약연고는 통증을 줄여주고 감염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피부이식수술이 아닌 침과 연고로 치료하니 피부 변색과 변형 등 후유증이 덜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침 치료는 면역물질을 늘려 상처를 빠르게 치료하는 기능을 합니다. 화상 상처는 소독할 때 고통이 너무 커서 어른도 힘들어하는데, 저는 상처 치료는 기본적으로 아프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우리 한의원은 특별한 상처 연고를 사용하는데, 통증을 줄여주고 감염은 막으면서 피부를 재생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수술 없이 치료가 가능한 경우에도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피부이식수술에 대한 문제 제기와 화상치료에 대한 자신감으로 시작한 화상 한의 치료. 하지만 그간 조성준 원장이 걸어온 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의원에서 화상치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일이기에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어려움이 많았지만,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책임감을 조성준 원장은 기꺼이 감내하기로 마음 먹었다. 수술 이외에 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고 진단받고 마지막 희망으로 한의원을 찾은 환자들의 신뢰와 응원 덕분이었다.
“개원한 지 7개월쯤 되었을 때 전신 화상 환자가 내원하셨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상처가 심한 케이스여서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입원실 한쪽에서 불침번을 서며 지켜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실 매 순간 걱정의 시간을 보내며 지금까지 그저 버텨낸 것 같아요. 하지만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저를 믿어주시는 환자분들이 계셨기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만 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상처 치료, 환자를 위한
다양한 선택지가 필요한 시기
현재 한의원에서 치료하는 외상은 화상, 욕창, 피부괴사 등이다. 피하조직이 손상되면 피부이식수술을 해야 하는 양방 치료와 달리, 한의 치료는 피하조직이 손상되더라도 수술 없이 치료가 가능해 환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화상이나 절단, 욕창 등으로 인한 상처는 생각보다 치료가 잘 안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재생을 통해 회복되는 경우가 매우 제한적이거든요. 그래서 끊임없이 수술을 하고, 수술해도 치료가 안 되면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반면 한의사는 다양한 약재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시도해볼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넓어요. 많은 이가 해보지 않아서 겁먹고 걱정하다 보니 한계가 있을 뿐, 저는 한의 치료가 여러 범주에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조성준 원장은 환자들의 상처 회복 과정을 꼼꼼히 메모해 사진과 함께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한의 치료가 낯설거나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에게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근거를 제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특히 지난 2021년에는 피부이식수술을 원치 않는 3도 화상 환자에게 침과 한약연고로 치료한 경과를 정리한 논문을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급 국제학술지에 발표해 중증 상처에 한의학적 치료를 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조성준 원장은 이 논문이 화상, 욕창, 피부괴사 등 상처에 대한 한의 치료의 성과를 전문 학술 분야에 알리는 계기가 되어서 기쁜 마음이라고 전했다. 피하조직이 드러난 상처가 침과 한약연고로 치료해 재생된다는 것은 엄청난 발견이라고 다시금 강조한다.
이처럼 상처 치료, 피부재생과 관련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조성준 원장이 현재 주목하고 있는 것은 욕창 관리다.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드는 현시점에서 거동이 어려운 급성기 환자의 욕창 관리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욕창은 만성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보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되다 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욕창환자 보호자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현재 욕창에 대한 표준화된 치료법이 없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한방으로 상처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함께 해결해나가면 좋겠습니다.”
한의 치료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이 많아 지난한 과정을 거쳐온 조성준 원장에게 꼭 이루고 싶은 꿈을 물으니,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1962년 학술지 Nature에 게재된 논문으로 습윤 드레싱이 건조한 드레싱보다 피부재생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저는 저만의 드레싱 방식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환자들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방식이 우리나라 상처 치료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그러면 저의 역할도 다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